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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십자가와 성령



십자가와 성령은 너무나 성격이 다른 말이어서 천국과 지옥, 복과 저주, 은혜와 율법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죄와 저주에 대한 심판에 관련된 말이고, 성령은 생명과 복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너무나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도저히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늘 우리 안에 십자가를 계시하시고, 십자가를 증거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합니다. 성령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거룩한 삶을 살며, 십자가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더러운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 안에서 능력 있게 살게 하십니다. 종교 개혁의 깃발을 들어 올렸던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가 빠진 기독교 신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인간들의 사회집단과 다를 바 없다. 십자가가 빠진 성경은 하나의 허구, 소설, 문학의 스토리다. 십자가의 고난이 빠진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한 인물에 불과하다. 십자가 없는 계시(성령)는 하나의 최면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한 마디로 십자가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없는 계시, 십자가가 없는 성령은 하나의 최면술에 불과하며, 영적 망상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모두 십자가를 통과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할 때도 십자가를 통과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신자의 삶의 근거이며, 모든 길은 십자가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성도들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함으로써 죄를 이기는 승리의 삶, 열매맺는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이 둘은 결코 다른 사건이 아니지만 믿고 깨닫는데는 성도들마다 각자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막상 십자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이 없음으로 인해 권능과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여전히 죄와 육신 가운데 산다면 이는 비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진리의 지식을 배움으로써 참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을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성경을 멀리하고 배척함으로써 전혀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지독한 무지로 인해 영적 암흑 가운데 살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뜻)하시느니라.](딤전 2:4).- Who will have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u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고 영적 생활을 영위한다는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이런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입니다.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디모데후서 3:7을 보십시오.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 Ever learning, and never able to come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저는 이번 십자가 사경회를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십자가에 관련된 영적 지식이 풍성해 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풍성히 누리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진리의 지식은 성도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데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1:8, 골로새서 1:10입니다.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우리는 여기서 영적 지식이 열매를 맺는 일에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바른 영적 지식이야말로 우리를 참된 자유와 능력과 넘치는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갈보리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또 하나의 놀라운 은혜는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십자가와 성령에 대해 말씀을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갈3:13-14).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얻어지는 두 가지 중요한 은혜를 봅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약속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성령은 주로 주님이 기름 부으신 대언자, 왕, 제사장에게만 임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를 대언자요, 왕이요, 제사장으로 임명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는데, 이 저주의 십자가가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는 가장 귀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지상 생애 동안 성령은 임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7:39,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주께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음이더라.)](요7:39). 우리는 주님의 지상 생애 동안 자신은 성령을 받으셨지만 제자들 중 아무도 성령을 받지 못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를 믿고 따르던 누구도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지 않으시면 이 땅에 누구도 성령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이는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요16:7). 성령께서는 위로자로 오십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성령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이며, 성령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다 기억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이 승천하신지 40년이 지나서도 성경을 기록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성령은 주님을 증거 하셨고, 증인들을 세우셨습니다. 이는 사도행전의 역사요, 교회사의 역사입니다. 이 역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진리를 조명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았던 제자들은 즉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언제나 십자가를 선포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을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는 누구도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 누구도 주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한 사람은 없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와 성령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보혈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으로 자신의 피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른 자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택하심을 받고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른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벧전1:2).

성령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 즉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증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요, 물과 피로 오셨고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그 까닭은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요일5:6).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을 함께 하셨고, 주님이 갈보리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증거하고, 그것을 증거할 증인들에게 힘과 지혜를 부여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피와 죽음이 성령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자유롭게 역사할 수 있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지옥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 충만과 그분의 내주하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십자가는 우리를 성령께로 인도하고, 성령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끈다’는 말은 참으로 진리를 잘 표현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령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받은 성령에 의해서만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진정한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상호 역사를 통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사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됩니다. 십자가에서의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통해서만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십자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오직 성령만 외치는 성도들이나 교회들이야말로 성령에 대해서 가장 무지한 자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순간 누구나 성령을 받았고,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그는 놀라운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을 때 그는 최초로 성령의 증거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순간이며, 성령의 인격적 역사를 믿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후로부터 우리는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도록 되어있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구원받은 첫 사랑의 감격에 빠졌을 때는 오직 주를 위해,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런 믿음의 상태는 평생 지속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의 더 깊은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부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하여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엡3:16-19).이 말씀은 성령의 사역을 잘 압축해 놓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했는데 그 중에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란 부분에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믿을 때 이미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에베소 성도들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간절한 기도 가운데 하나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입니다. 이는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진리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란 것입니다. 믿음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입니다. 믿음은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눅22:32, 롬4:19) 있습니다. 믿음은 부인될 수도 있고(딤전5:8, 계2:13), 떠날 수도 있습니다1)(딤전4:1, 6:10). 믿음은 시험받기도 하고(살전3:5), 믿음은 성장하기도 합니다2)(고후10:5.실후1:3). 이런 이유로 우리는 믿음에 따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거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떠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회적 사건이요, 그분의 피 역시 역사적 사건이지만 우리의 믿음은 단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지속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알고, 그것을 현재 나에게 적용하고 사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믿음은 믿는 대상과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실로 그 사건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지금 현재 지속적으로 그분과 교제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과 함께 결합해야 합니다. 불신앙은 죄입니다. 흔히 성도들 가운데 불신앙을 자신의 연약함으로 합리화하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불신앙은 회개를 필요로 하는 죄이며, 버려야 하고 떠나야 하는 죄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류의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신앙의 죄란 사실을 인식하고 늘 지속적으로 믿음에 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기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믿음의 영을 주신 살아 계신 그분을 의지하고, 우리의 영을 의탁합시다. 우리 자신, 자아를 부인하고 겸손히 주님께 모든 것을 의뢰합시다. 전적으로 주님께 굴복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주님이 지상 생애 동안 사셨던 믿음의 삶을 우리 역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매 시간마다 반복적으로 전하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 자아에서 나온 어떤 것도 받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비록 선하고 의롭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더럽다고 여기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사시는 것은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동안 전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굴복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같이 우리 역시 그런 동일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그냥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익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은 삶에서 순간 순간 고난과 시험을 통과하면서 이해되어지고, 산 경험으로 영혼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일생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살았고, 매일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었던 사도 바울이 무엇을 알고자 애를 썼는지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모습이 되어 어찌하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하노니](빌3:10-11). 십자가는 신자들의 믿음과 삶의 기초이며, 출발점인 동시에 평생을 더욱 깊이 알아 나가야 하는 주제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만이 십자가를 깊이 알고자 애를 쓰고, 십자가를 더욱 사랑합니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생활 가운데,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어떤 시련과 환난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 말이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성령의 사역을 신뢰하지 않고, 계시로 주어진 십자가의 해석 즉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없이 갈보리의 구원을 깨닫고자 한다면 그것은 헛된 종교 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힌 진리를 믿지 못한 채 성령 충만을 기대하고 성령의 권능과 열매를 기대한다면 여러분은 영적 환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갈보리의 십자가로 가 보십시오. 십자가에 높이 매달린 주님과 함께 여러분도 그 곳에서 함께 못 박혔다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성령의 기름부음은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21, 요일2:27을 보겠습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고후1:21).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7). 이미 저와 여러분에게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은사주의 교회들이나 이단 종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이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를 왕과 제사장, 대언자로 삼으셨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은 왕으로서 우리의 의지를 다스리십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반역과 완고함으로 주님의 원수된 삶을 살았습니다. 죄인들의 의지는 빛보다 어둠을 선택합니다. 선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악을 행합니다. 의(義)가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거슬러 죄를 행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지만 번번이 그 의지(意志)는 좌절되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했을 때, 우리는 우리를 다스리는 주님으로 인해 의(義)와 선(善)을 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내주하시는 성령,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행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명하시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믿음으로 악을 대적하여 싸울 수 있고,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의지를 기꺼이 주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Yield- 내어 드리라. 이것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듯이 순종 역시 감정과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결단입니다. 주님께 굴복된 의지만이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의지입니다.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희생제물이 되셔서 죄와 죄의식(罪責)을 제거하시고, 양심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강,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책을 사해 주신 주님의 은혜로운 사역의 결과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감정은 평안과 기쁨, 넘치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喜樂)이기 때문이라.](롬14:17).

대언자로서 주님은 말씀의 빛을 비추셔서 죄와 사망의 어둠 가운데 있던 우리에게 영적 지식, 진리의 지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지각력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18, [그들의 지각(知覺)은 어두워지고 그들 속에 있는 무지와 그들의 마음이 눈먼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엡4:18). 마귀는 우리의 지각을 어둡게 하기 위해 마음 위에 베일을 가려 버렸습니다. 대언자로서 주님의 말씀은 지각을 밝히시고, 지각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17-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저는 오늘 이 모든 일이 십자가와 성령의 사역임을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 진리를 더욱 풍성하게 계시해 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우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성도가 되시기를 빕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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