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아래 내용 설명을 보십시오.
2017/06/19 - [주의 첫날/주일 설교] - 성경에 나타난 방언, 말씀: 고전14:22,23 참조할 것.
1. 알지 못하는 언어란?
말하거나 듣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언어를 말합니다. 제게는 몽골어, 인도어, 스와힐리어 등 거의 모든 외국어가 '알지 못하는 언어'입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방언"(unknown tongue)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합니다. 오순절에 사도들은 여러 가지 방언을 했는데 말하는 이들에게 "알지 못하는 언어"였고 듣는 이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언어, 자국어(모국어)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하는 언어였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하는 방언은 이와 달리 '언어'가 아니라 그냥 소음이요, 이교도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교회 내에서 잠잠하든지, 통역을 세우든지 해야 합니다(고전14:27,28).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처음 온 자는 그를 미쳤다고 판단합니다(고전14:23).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자기를 세우지만 남이나 교회를 세우지 못합니다(고전14:4).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야만인이 됩니다(고전14:11).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허공에다 말하는 것입니다(고전14:9)
2. 알지 못하는 언어는 하나님께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언어?
고린도전서 14:2절은 현대 방언을 하는 이들이 자랑스럽게 인용하고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하느니라."(고전 14:2)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고전14:2). 그럼 자국어, 모국어, 알려진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사람들 모두에게 하는 말입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는 자신도 모르고 사람들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말이지만 모국어는 자신도 알고 사람들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방언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언어, 이해하는 언어, 모국어로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말하고 *사람들에게도 말하는 것이란 점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 행위는 모두 하나님이 들으시고 보시고, 감찰하시고, 기록하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를 지어도 그것은 주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한다는 것에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방언 구사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모국어로 하는 이들' 역시 하나님께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하늘의 까마귀들도 하는 일입니다(욥38:41).
창세기 21:16,17절을 보십시오.
"...아이가 죽는 것을 내가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녀가 그를 마주보며 앉아서 목소리를 높여 우니"(창 21:16). 주께서 하갈 뿐 아니라 이스마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창21:17).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음성을 들으시니라.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 그녀에게 이르시되, 하갈아, 무엇이 너를 괴롭게 하느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 아이가 있는 곳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느니라." (창 21:17).
하갈은 물이 없어 자기 아들 이스마엘이 죽게 되자 울며 말했습니다(창21:16). 하갈은 죽어가는 아들에게 말했지만 그 말은 하나님께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무엇을 말했는지 몰라도 주님께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면 모국어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도 모두 하나님이 들으시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법의 도시였지만 그들의 부르짖음조차 하나님께 하는 말이엉었고, 주께서 그것을 들으셨습니다(창18:21). 이집트에서 노역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도 주님은 들으셨습니다(출2:23). 사람이 하나님께 말하지 않고 혼자 말을 하는 것, 서로 간에 말하는 것, 불평하는 것, 허공에다 하는 말, 침상에서 하는 말까지 주님은 모두 다 들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할 때 주님은 "내가 들었다"고 하셨습니다(신5:28). 광야에서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불평하는....내가 들었노라."(민14:27)고 하십니다.
'알지 못하는 말(방언)'을 하나님께 하는 말이라고 하는 주장은 성경의 본문과 달리 모국어로 하는 말은 주께 하는 말(언어)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또는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이 하나님과 직통 언어로 하는 말(언어)이란 의미를 내면에 포함합니다. 고린도전서 14:2절에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느니라."는 말씀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하는 말은 모국어로 하는 말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그가 영안에서 신비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신비들'과 '영안에서'란 말을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들'에 대해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 봅시다. 우리는 사적인 해석을 배격하고 기록된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1,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신비들'이란 복음의 신비, 교회의 신비, 경건의 신비, 믿음의 신비, 왕국의 신비, ....'와 같은 것들로서 우리가 맡은 주의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비들을 알아 듣기 쉬운 언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이런 신비들을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공자 앞에 문자 쓴다는 말보다 더 황당한 경우입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신비들을 말하는 것은 제자가 스승을, 종이 주인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웃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들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사람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대언자들, 사도들은 언제나 그렇게 했습니다. 선교사들 역시 그렇게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라면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께 복음의 신비, 믿음의 신비를 말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비들을 말해야 정상입니다.
4.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성령 안에서 말한다? 아닙니다. '자기의 영, 사람의 영'입니다.
'그가 영안에서 신비들을 말한다'는 것은 그의 혼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각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이 아니고 '자기 영'입니다.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이는 성경을 보면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소문자로 spiri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영, 자기 영입니다. 이는 14절 말씀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가리키는 말은 대문자 Spirit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은 기도하거니와 나의 이해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고전 14:14). -나의 영, *성령이 아님.
성경은 '성령'이 아니라 '나의 영'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5. 그럼 알지 못하는 언어가 아니라 '아는 언어, 이해하기 쉬운 말'인 모국어로 말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그는 "성령 안에서" 말하고, 걷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 있고 성령 안에서 걷습니다(롬8:9).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성령 안에서 걷는다.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 성령 안에서 산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갈 5:25).
▶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그 일에 깨어 있고”(엡 6:18)
▶ 성령 안에서 말한다.
“또한 성령 안에서 너희의 사랑을 우리에게 밝히 알려 준 자니라.”(골 1:8)
이 구절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동역자인 에바브로는 '알지 못하는 언어'로 바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모국어로 말했는데 그가 "성령 안에서 말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국어로 자기가 깨닫는 말로,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하는 것이 성령 안에서 하는 말입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 안에서' 하는 말입니다.
6.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입니다(고전14:9).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혀로 알아듣기 쉬운 말들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한 것을 어찌 알리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리라.”(고전 14:9)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허공에다 하는 말은 그들이 자기 영 안에서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께 하는 그 사람의 말은 허공에다 하는 말입니다. 그의 말은 하나님이 들으십니다(고전14:2). 사람은 듣지 못하기에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고, 아멘할 수도 없고, 야만인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말했지만 정작 말한 자기 자신의 지각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을 때 주님을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불평했을 때 그들의 불평하는 말은 주께, 주의 귀에 하는 말이었습니다.
양과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그들이 한 일이 모두 주께 한 일로 간주되었고 심판 받았습니다. 그들이 한 모든 일은 다 주께 한 것이었습니다.
까마귀들이 날면서 울부짖는 것은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입니다.
“까마귀 새끼들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 헤맬 때에 누가 까마귀를 위해 그것의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느냐?”(욥 38:41)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은 자기 영이 말하는 것이고(고전14:2)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는 것은 자기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고전14:14)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은 기도하거니와 나의 이해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고전 14:14)
아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성령 안에서 말하는 것이고, 자기 영과 혼이 모두 말합니다.
아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6:18), 자기 영과 혼이 함께 기도하며 이해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고전 14:15)
방언에 대한 성경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로 말해야 하는지, 어떤 말로 기도하고 노래해야 하는지 성경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깨닫는 말로 말하고 기도하고 노래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말로 만 마디 하는 것보다 깨닫는 말로 다섯 마디 말을 해서 가르치는 것이 낫습니다. 이는 기도나 찬양이나 사람 간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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