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53. 주님을 영화롭게
말씀: 사24:15



사람의 죄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존귀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음으로써 죄를 범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짓는 가장 큰 죄 중에 하나입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며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요,](롬1:21). 사람들이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고, 우상으로 만들고, 신격화하는 데는 매우 익숙합니다. 그것이 정치인이든 학자이든 배우이든 운동선수이든 간에 그 시대에 알맞은 몇 몇 사람들을 높이 올려 줍니다. 죽은 후 몇 백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이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고, 잠시 박수갈채를 받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배우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존경하고 사랑하다가 마음이 변하여 경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사람과 사람 간에 일들입니다. 때로 조국을 위해 일신을 바친 애국자들이 있고, 회사를 위해 일신을 불태운 사람들이 있고,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 가족을 위해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혼을 다하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자신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시고, 모두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해 버리십니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사오매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4).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관심이 없습니다.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그분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높고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입니까?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믿지 않음으로써 주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그러하다 할지라도 문제는 교회를 다니고,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영화롭게 하고 있습니까? 남들은 그러하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러 새롭게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의롭고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영화롭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제사장,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대사, 하나님의 교회] 등 하나님의 무엇 무엇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으로 들어와 하나님과 유기적 친교를 맺고, 신분이 확증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상속 유업을 받게 된 것을 성경에서는 ‘영화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럼 우리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취해야 할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일 수도 있고, 찬양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고, 희생물을 드리는 것일 수도 있고,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원수 관계였다면 이제는 영화롭게 된 관계요, 영화롭게 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성경에 무지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인기를 얻거나 명예를 얻거나 돈이나 권력을 얻거나 탁월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잘되는 것이 자기에게도 좋고 주님의 이름도 욕 먹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많은 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적인 성공과 출세 등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내가 잘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잘 되는 것이요, 나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와는 반대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불 속에서 [주]를 영화롭게 하고 바다의 섬들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로다.](사24:15). [불 속에서]란 말씀은 극심한 시련과 환란을 말합니다. 고난과 환란이란 상황에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성도들의 임무입니다. 이는 우리의 정신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고, 건시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일수록 주님의 권능과 은혜와 능력과 사랑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주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 우리는 주님의 전능하심, 신실하심과 언약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와 존귀를 돌릴 수 있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일이 전적으로 주님으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고, 주님이 행하신 결과임을 알기에 기꺼히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수태고지를 해 주었습니다. 그 때 마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노아가 또 [주]의 천사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영화롭게 하리이다, 하니](삿13:17). 이 일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주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이기에 그것을 인정하고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주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믿을 때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침례인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음으로 인해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믿을 때 그 믿음대로 말씀이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되며, 그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는 다만 믿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믿을 때 그 역시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주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릴 때 우리의 인내는 반드시 결실을 맺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보다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둘째, 고난의 날에 주님을 부를 때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의 때에 전문가를 찾고, 친구를 찾고, 누구 도움을 줄 사람을 찾습니다. 여러분이 힘들 때 제일 먼저 누구를 부르는가(call)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응답해 주시고, 그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고, 건져 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출세, 성공, 승진, 유명세 등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기도하며 주님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셋째, 찬양을 드리는 자는 다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찬양을 드리는 자는 다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로다.](시50:23). 주님은 찬양을 드리는 자를 기뻐하시고, 찬양을 받으십니다. 찬양은 입술의 희생물입니다.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다하여 주를 찬양하고 주의 이름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오리니](시86:12). [그분의 이름의 존귀하심을 노래하고 그분의 찬양을 영화롭게 할지어다.](시66:2). * 부흥 90(찬양)편 참고 할 것.

넷째, 경배함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들이 주 앞에 와서 경배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리이다.](시86:9). 주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경배를 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분리된 다른 것이 아니라 연결된 점층법입니다. 주님을 경배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부흥90(경배)에 관한 글 참고할 것.

다섯째, 가난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때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이 그냥 선행이나 자선사업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성경은 그것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만드신 이를 모욕하는 자로되 가난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자니라.](잠14:31). 가난한 자를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은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라고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매우 강조하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가난한 자를 업신여김으로써 주님을 모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은 이 점을 각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겼도다. 부자들은 너희를 학대하고 재판석 앞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를 부를 때 쓰는 그 귀한 이름을 모독하지 아니하느냐?] (약2:6~7).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이 성도의 직무임을 말해 주셨습니다. 베풀어도 되 갚아 줄 수 없는 약자와 빈자를 돕는 것은 주님이 받으시는 의로운 일이요, 주님께서 친히 갚아 주실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께서 그가 베푼 것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우리는 형제들의 어려움에 눈을 감아서는 안됩니다. 재물을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는 일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가 /재물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지속되고 그의 뿔이 영화로이 높임을 받으리로다.](시112:9). 복음의 핵심 사역이 구제는 아니지만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즐거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구제요, 돕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섯째, 주님이 주신 일을 완수함으로써 영화롭게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끝마쳐서 아버지를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나이다.](요17:4). 우리 주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완수함으로써 주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달려 갈 길을 마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토록 예수님께 받은 사역을 끝마치고자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행20:24). 그리고 결국은 소원대로 달려 갈 길을 마쳤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딤후4:7~8).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물론이요, 날마다 할 일들을 함으로써, 계속해야 할 일들을 함으로써, 열매를 풍성히 맺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달려 갈 길을 마쳐야 합니다.

☜ 암송할 구절: 사24:15, 시50:15

☜ 생각해 볼 문제: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적으시오.
-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해 보시오.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때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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