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32:32

요절: 출애굽기 32:32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중보하며,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라고 기도할 때 “주의 책”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주의 책이 말 그대로 주님의 책이요, 주님의
소유요, 주님이 쓰신 것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의 책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책의 저자이십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책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1에 마태는 이렇게 글을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
(마1:1). 마태는 세대에 관한 책이라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글자를 읽는 그대로 믿지 않고
‘족보’(genealogy)에 관한 책인 줄 압니다. 세대(generation)과 족보는 완전히 다른 단어입니다. 단어를 치환해서 읽거나
대체하는 것은 올바른 독서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 합니다. 족보에 관한 책으로 읽으면 예수님의 족보는 엉망이 되고
맙니다. 주님은 족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1장은 결코 주님의 족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
역본들에서는 저자의 동의와 허락없이 함부로 주의 족보라고 내용을 고쳐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다른 영어 역본들을 보면
generation이란 단어 대신 genealogy란 단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 자체만으로 주님의 세대에 대한 책입니다.


성경에 단 한번 밖에 나오지 않지만 ‘주의 전쟁의 책’도
있습니다. [이러므로 [주]의 전쟁의 책에 일렀으되, 그가 홍해와 아르논의 시내에서 행하였고](민21:14). 이 책은 성경을
일컫는 것인지 다른 어떤 책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주의 책은 다양합니다. 언약의 책, 율법의 책이라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 역시 [주의 책]입니다. 대언자들의 책, 시편의 책, 모세의 책 등도 모두 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일컬어 “대언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배교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나옵니다. 주님은 책에 무엇인가를 기록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기도 하시고 아무도 열어 보지 못하게 봉인하기도 하십니다. 성경으로 주어진 책은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는 그대로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66권입니다. 이는 매우 방대한 양의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려 1500여년에 걸쳐서 40명이 넘는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입니다. 모세 오경을 일컬어 주님은 모세의 책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는 너희가 모세의 책에서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신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
막12:26). 주님은 모세의 저작을 인정하시면서 율법을 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 외에 대언자들의 말씀을 기록한 대언서 역시 책입니다. [/이것은/ 곧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의 책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라.
이르시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行路)를 곧게 하라.]
(눅3:4).
주님은 이사야서를 읽을 때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의 책’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시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에서(in the book of Psalm) 다윗이 친히 이르되,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눅20:42). 주님은
‘시편의 책에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은 주님이 쓰신 책입니다. 이는 사도들의 증언에서도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 다양한 수십 종류의 책을 읽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 땅에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기록하신 유일한 책을 여러분은 읽고 공부하는
특권과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쓴 책은 생명을 주지 않습니다.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서점이나 도서관에 얼마나 책들이 많습니까? 조그마한 감동을 얻기 위해서 닭죽
시리즈(Chicken Soup for...)를 사서 읽습니다. 성공을 위해 ‘성공한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과 같은 책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을 통해 쓴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책들을 그렇게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면서 정작
주의 책에는 무관심한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이 읽어야할 책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책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이며, 율법 책입니다. 이 책의 권위는 하나님과
동등하여 이 책을 펼 때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기관 에스라가 온 백성 위에 있으므로) 온 백성의 눈앞에서 책을 펴니
그가 책을 펼 때에 온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8:5). 오늘날 어떤 성도들은 성경책을 베고 자기도 하고 아무 곳에나 올려 두고 팽개쳐
두는데 이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백성들은 성경책을 펼 때 벌떡 일어났으며,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이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의 부흥을 가져온 첫 번째 요소입니다. 여러분들은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떨어야 합니다. [...[주]가
말하노라. 오직 가난하고 영으로 통회하며 내 말에 떠는 자는 내가 보살피느니라.]
(사66:2b).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주의 말씀을
두려워합니다. 주의 책은 쓰여진 대로 이루어지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대로 현실이 되고, 성취가 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닙니다. 어느 작자 미상의 글에 “자주 그리고 천천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성경을 읽으라. 성경이 네 기억 속에 박히게 하고 마음을 지배하게
하며 발걸음을 인도하게 하라. 성경은 부의 보고요, 영광의 낙원이요, 기쁨의 강이다. 네가 살아 있을 때에 주께서 네게 성경을 주셨으니 또한
심판 때에 이것을 펴시고 영원토록 너를 기억하실 것이다. 성경은 최고의 책임을 요구하여 수고에 대해서는 최고의 보상을 주되 그 안의 거룩한
내용들을 무시하는 자는 다 지옥 불로 정죄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책의 저자이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을
통해 감동을 주시고, 책을 저술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 이는 대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말하였음이라.]
(벧후1:20~21). 성경과 보통 종교 경전이나 사람들이 쓴 책과의 차이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것인가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입니다. 언론, 출판의 자유는 사람들이 항상 보장 받기를 원하는 자유입니다. 그들은 누구나 책을 내고 싶어 합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곳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어떤 지식이 있으면 책을 내고, 그 책을 본 사람들이 거기서 다시
발전을 시키는 식으로 해서 기술과 지식이 계속 축적됨으로써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인들은 중요한 정보와 기술이 있으면
비법, 비방이란 이름으로 숨겨 버림으로써 서로 공유(共有)하지 못하고, 발전이 없었습니다. 널리 퍼지지도 못했습니다. 이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은 특허 제도를 이용해서 정보를 공개하는 자들의 권익을 보호해 줌으로써 언제든지 책으로 낼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기에 특허권도 판권도 없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읽고 순종할
따름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돈벌이에 이용해 먹는 출판사들이 판권(copyright)을 걸어서 장사를 해먹지만 여러분이 읽는 하나님의 말씀은
판권이 없습니다.


성경의 어떤 책은 주님의 명을 받아 기록을 했지만 모두 열린
책은 아니었습니다. [오 다니엘아, 오직 너는 끝이 임하는 때까지 이 말씀들을 닫아 두고 이 책을 봉인(封印)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겠고 지식이 증가하리라.]
(단12:4). 주님은 다니엘에게 말씀을 주셨지 말씀을 닫아두고 책을 봉인하라고 하셨습니다. 봉인된 책은
사람들이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시기 전까지 아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책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다니엘서의 봉인은 풀렸습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되, 이 책의 대언(代言)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계22:10). 우리는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성경을 많이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주님은 읽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올 한 해 여러분들은 성경을 읽고 또 읽음으로써 평생토록 성경을 곁에 두고 읽는 습관이 완전히 형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성경은 읽어도 도무지 모르겠다며 성경 읽기를 거부합니다. [/그런즉/ 모든 /자들의/ 환상이 너희에게는 봉인(封印)된 책의
말씀같이 되었나니 사람들이 학식 있는 자에게 그것을 주며 이르기를, 원하노니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니 나는 읽지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사29:11). 이 시대는 성경이 봉인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열려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주의 책은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책을 먹어야 합니다. 책은 순수한 젖이며, 빵이며, 꿀이며, 사과이며, 물이며, 고기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신8:3, 마4:4). [내가 그 천사에게 나아가 이르되, 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 한즉 그가 내게 이르되, 이것을 가져다가 먹으라. 이것이 네 배는 쓰게 할 것이나 네 입에서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그 천사의 손에서 그 작은 책을 가져다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으나 먹은 뒤에 즉시로 내 배가 쓰게 되었더라.]
(계10:9-10).
사도 요한은 책을 먹었습니다. 성경을 먹도록 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역시 성경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책을 주시어 먹게
하십니다. 우리는 평생토록 책을 양식으로 삼아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생명은 주님이 주신 책이 양식입니다. 입으로 책을 먹은 사람들은
입으로 먹은 책은 내용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네가 발견한 것을 먹으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의 집에게 말하라, 하시기에 내가 입을 벌리니 그분께서 나로 하여금 그 두루마리를 먹게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네 배로 하여금 먹게 하고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창자를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그것을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3:1~3).
주님은 에스겔의 입을 벌리고 그 책을 먹게 하셨습니다. 이 책을 꼭꼭 씹고 되씹어서 창자를 채웠습니다. 에스겔은 주님이 주신 책을 받아 먹을 때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 힘으로 대언자의 사역과 직무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힘을 쓰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을 풍성히 먹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먹지 않으면 힘이 얻고 의욕이 떨어집니다. 영적인 생명도 동일합니다. 이런 체험은 다윗에게도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 여러분들이 모두 이 맛을
볼 때 다른 것들이 입맛을 당기지 못합니다. 말씀은 맛만 있을 뿐 아니라 건강식입니다. [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 달고 뼈에 건강을
주느니라.]
(잠16:24).


주의 책은 일반 사람들이 쓴 책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죠지
뮬러는 말하기를, “나는 많은 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성경보다는 종교 서적을 더 많이 읽는 함정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전과 같이
육신적인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 프랑스, 독일의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때까지는 책 중의 책인 성경을 이 책들보다 크게
대우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전도지, 선교 소식, 설교문,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전기 등을 읽기도 하였는데 이런 책들이 그래도 다른 책들보다는
유익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책을 잘 선택하고, 이런 책만 너무 편중하여 많이 읽지 않고, 특별히 이 책이 더 성경을 읽도록 유도하기만
한다면 더 없이 좋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어 계속해서 읽었던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것이
뮬러가 처음 기독교인으로서 4년 동안 아무 열매없이 살았던 날들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는 후에 성경 외에 모든 책들을 멀리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무려 200번이나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그는 평생 5만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언제 어떻게 받았는지
기도 수첩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의 놀라운 기도 응답은 전적으로 성경 읽기에 기인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능력있는 기도, 풍성한 기도 응답을
원한다면 성경 읽기에 매진해야 함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죠지 뮬러는 성경을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4 가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 먼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이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분임을 철저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기 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으로 말미암는 영적인 복들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단번에 곧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는
분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구절들은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묵상하고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 읽기는 단번에 나의 영적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
준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꾸준히 읽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성경 전체를 계속해서 통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매일 신약과 구약을 어제 읽은 곳에서부터 계속해서 읽습니다. 이렇게 읽지 않으면 특별히 좋아하는
구절만 읽게 되므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을 통독하지 않으면 성경의 다양성을 접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을 통독하지
않으면 어떤 말씀은 어떤 말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거나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반면 어떤 구절은 경시하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이는 심각한 모순이
되고 맙니다. 성경을 통독하지 않으면 특정 주장이나 가르침을 다른 주장이나 가르침보다 중시하게 되거나 더욱 강조함으로 다른 진리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할 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딥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성경을 한 번도
통독하지 못했거나 통독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성도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넷째, 성경을 읽은 후에는 묵상해야 합니다. 주석서를 통해 배운
것들은 많은 관념으로 때로는 하나님의 진리로서 머리속에 남아 있었지만 기도와 묵상을 통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배운 것들은 마음과 삶에 영향을
줍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은 마음에 쉽게 부풀어 오르지만 다른 주해서나 책을 읽을 때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배운 지식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며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죠지 뮬러와 기도의 응답, 생명의 말씀사 부록 2에서 부분 발췌-


저는 여러분들이 주의 책을 더욱 열심히 읽고 먹는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아들아, 오직 너는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 반역하는 집같이 반역하지 말며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니라. 이에 내가 보니, 보라,
/그분께서/ 한 손을 내게 보내셨는데,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 한 권이 있더라.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책은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안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더라.]
(겔2:8~10). 주님은 자신의 책을 주시고 먹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먹어야 할 양식으로 주어진 주의 책이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여러분의 책임이며, 의무입니다. 성경을
양식으로 삼는 사람들은 하루만 굶어도 허기를 느끼지만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집니다.


주님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세처럼 기름부음을 받아 성령을 받은 일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부어졌다는 사실이 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
안에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이는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할 것임이라.]
(수1:8).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경을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경을 통해 성령 충만함을 받습니다. 왕이 된 자들의 의무 역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筆寫)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신17:18~19).
여러분이 왕같은 제사장들이라면 매일 해야 할 일이 이미 정해진 것이며,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실천력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중보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말한 [주의 책]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책은 일반적으로 생명책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성경은
생명 책에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임을 말해 줍니다. [또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도 간절히 권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또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료 일꾼들과 함께 수고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 책에 있느니라.]
(빌4:3). 바울과 함께 복음 안에서 수고한 몇 몇 여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영접할 때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10:20). 땅에 기록된 것과 하늘에 기록된 것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을 받아 일을 했는데 주님은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일을 할 때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됩니다. 반면 주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들은 땅에 기록됩니다. [오 [주]여,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여, 주를
버리는 자들은 다 부끄러움을 당하며 나를 떠나는 자들은 땅에 기록되리니 이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주]를 버렸음이니이다.]
(렘17:13).
땅에 기록되면 땅이 소멸될 때 함께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늘에 기록되면 그 기록은 영원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이 땅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어합니다. 돈이라도 있으면 기부를 해서 건물 이름 하나, 도시나 거리 이름 하나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일이 큰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름은 땅에 기록된 것이지 하늘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전도 여행을 떠났던 70인의 제자
이름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역사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땅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원하는 이름보다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이 되기를 원하십시오.


주의 책에는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기록됩니다. [내가
떠도는 것을 주께서 세시오니 내 눈물들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 눈물들이 주의 책에 있지 아니하나이까?]
(시56:8). 다윗은 자신이
흘린 눈물까지 주의 책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책의 기록은 매우 상세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주의 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어려운 고통이 주님께서 기록하신 기록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고 또 나로 하여금
내 젊을 때의 불법들을 간직하게 하시며 또한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내 모든 행로를 면밀히 살피사 내 발뒤꿈치에 자국을 남기시기 때문이니이다.]
(욥13:26~27). 욥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기록하시는 기록관이요, 책의 저자이심을 잘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다가올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될 백성이 [주]를 찬양하리로다.]
(시102:18). 창조될 백성은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성경의 기록은 주후 96년 경 요한계시록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책을 기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책을 가져다가 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담은 생명책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이요, 순수한
말씀이며, 권능의 말씀이며, 은혜의 말씀이며, 지혜와 지식과 명철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주신 책은 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로 하여금 듣고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로 하여금 듣고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나니 그러므로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2~14). 주님의 말씀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주의 책은 마치 인간의 생노병사의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듯이 기록한 책입니다. [나의 실체가 아직 불완전할 때에도 주의 눈이 보셨으며 계속해서 형성되는 나의 모든 지체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사오니 곧 그 지체들 중에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니이다.]
(시139:16). 주님은 우리가 이미 모태에서 형성되는 전
과정을 기록하셨는데 그 책이 바로 주의 책입니다. 주님의 책은 우리의 삶의 기록부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책에는 우리가 행한 말은 물론이요,
생각하나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나의 이름이 빠진다면 나는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빠짐없이 다 기록하셨습니다. 이 책이 활짝 펴지는 날 우리는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모두 회계
보고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말 하나까지도 다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롬14:12). 아무도 숨길 수 없고, 가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니]
(마12:36). 주의 책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저 하늘에서 기록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책에 기록된 내용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니]
(계20:12).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책들, 또 다른 책이 펴져
있다고 말합니다. 책 이름이 알려진 것은 생명 책 뿐입니다. 책들에는 죽은 자들이 행한 모든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고, 이 기록이 심판에
사용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성도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주어진 경고도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 버리면 하나님께서 생명 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 버리시리라.]
(계22:19). 이
대언의 책이란 좁게는 요한 계시록을 일컫고, 넓게는 창세기부터 모든 성경이 다 주님의 대언자들이 말한 대언의 책이므로 성경 전권을 말합니다.
주님은 성경에서 말씀들을 빼 버리면 생명 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 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책들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책에 기록된 각종 복들은
물론이요, 우리가 받을 몫들이 제해집니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몫(part)이라고 했지만 그의 이름(name)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많은 성경에서는 이 부분이 이름으로 고쳐져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생명책이란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대 환란
때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섬기는 자들 역시 생명 책에 기록되며 이들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이기는 자 곧 그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 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5).
이 말씀만을 볼 때 우리는 대환란 때에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 지워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생명 책에서 이름이 제해집니다. 반면 신약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누구나 이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은 주님 외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책입니다. [또 내가 보매 힘센 천사가 큰 음성으로 공포(公布)하기를, 누가 이 책을 펴며
이 책의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되 하늘에나 땅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볼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그 책을 펴거나 읽거나
들여다보기에 합당한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내가 많이 울었더니 장로들 중에 한 사람이 내게 이르되, 울지 말라.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곧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으니 그 책을 펴며 그 책의 일곱 봉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5:2-5). 주님만이 이 책의
봉인을 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봉인이 되어 있어서 펴거나 들여다 볼 수 없지만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책의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죄로 인해 자신의 이름을 지우시던지 아니면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던지 양자택일을 주님께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출32:32-33). 그 때 주님은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지워지는 일이 얼마든지 있음을 말해 줍니다. 주님은 주님께 범죄하면 그를 내 책에서 지워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그는 불 못으로 떨어집니다.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5).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지우시는 일이 없지만 어떤 세대에서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분명히 지워졌습니다. 예를 들어 고라와 그와 동행한 250명의 이름은
분명히 지워졌습니다. 사울의 이름 역시 지워졌습니다. 그들은 한 때 성막의 중요한 일을 섬기도록 지정받은 유력한 사람들이었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핑계 삼아 모세에게 대적했을 때 주님은 즉시 이름을 지워 버리시고 산 채로 지옥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또 그들을 산
자들의 책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시69:28).


주님은 악인들의 이름을 지우시며, 범죄한 자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 버리십니다. 이름은 기록된 자들은 거룩한 자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시온에 남은 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살아 있는 자들 중에서 기록된 모든 자는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리니]
(사4:3). 이런 구절들을 참고해 볼 때 모세가 말한 주의 책은
어린양의 생명책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생명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약 성도들은 주의 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은혜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주님은 다양한 책이 있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해서 주님은 그들의 이름을 기념 책에 기록하십니다. [그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주께서 귀를 기울여 그것을 들으시고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그분의 이름을 깊이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 앞에서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3:6). 주님은 몇몇 성도들의
이름을 기념 책에 기록하셔서 영원토록 기념하시는데 이는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신약에서 이런 기념 책에 기록된
사람으로는 마리아가 있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26:13). 마리아의 이름은 주 앞에서 기념책에 기록된 이름인지라 이 이름은 복음이 있는 한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의 이름을 깊이 생각할 때 주님은 그 이름을 기념 책에 기록하시고, 영원토록 기념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 아론의 옷을 만들 때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기념 보석으로 삼으시고 영원히 기념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들의 이름 역시 주의 기념 책에 있을 것입니다.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에 붙여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기념 보석이 되게 하되 아론이 [주] 앞에서 자기의 두 어깨에 그들의 이름을 메어 기념이 되게 할지니라.]
(출28:12).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자기 가슴에 놓인 판결의 흉패에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을 지니고 들어가 [주] 앞에서 항상 기념으로
삼을지니라.]
(출28:29).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고, 주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한 모든 일들 역시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의 기념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주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바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며, 주의 기념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방법입니다. [오 [주]여, 주의 이름은 영원히 지속되리이다. 오
[주]여, 주를 기념함이 모든 세대에 두루 미치오리니]
(시135:13). [의인을 기념하는 것은 복된 일이거니와 사악한 자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잠10:7).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의인이십니다. 주님을 기억하면 복된 일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주의 기념 책에 이름이
오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은 것에 차별이 없지만 주님을 섬긴 일에 대한
영광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주님을 위해 수고한 보상을 받을 때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 별의 영광이 다르듯 다른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유업의 보상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에는 차이가 없고, 생명 책에 기록된 것도 같겠지만
기념의 책에 기록되는 것은 주님께서 특별히 따로 기억하시는 이름들이 있습니다.